본업이 있지만, 현재 업무 월급이 목구멍에 풀 칠 정도라, 투잡을 해야겠어서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보다 보니 명절 아르바이트 단기 공고글 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. 그러다 30대 방황 시절 삼성 웰*** 명절 선물 VIP전달 안내 전화 알바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.
용인 구성역에 위치한 삼성 웰***라는 곳이었고 2주 단기 알바였다.
계열사 VIP 들에게 (보통 임원분들) 명절 선물 세트 배송 전, 수령 주소 더블 체크 및 명절 선물 책자에서 어떤 걸 수령받고 싶은 지 유선으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.
모태 서비스마인드를 타고났기에 업무는 크게 문제없어 보였고, 다른 알바에 비해 시급도 높아서 고민 없이 지원했었다.
공고마감 된 이후 면접 날짜가 문자로 왔고, 오전에 신나게 갔다.
웬걸 근무지 구내식당에 많은 알바 면접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하나같이 풋풋한 대학생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.
나이에서 걸러지겠구나 싶었는데 더 놀라운 건 면접도 만만치 않았다.
서비스업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 / 면접 지원 동기 등 이거 뭐 알바 면접 치고 허들이 좀 높아 보였다.
괜히 역시 대기업 이구나 싶고 ㅎㅎ
그럼에도 경쟁을 뚫고 합격하였다. OT를 하는데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.
처음에는 서로 나이 몰랐는데 직원분이 하다가 모르면 여기 이 분한테 (그게 바로 나) 물어보면서 하라고 하더니 나 보고는
집중해서 배워서 알려주라고 했다. 가뜩이도 내가 젤 나이 많아 보여서 주목받는 거 싫었는데 진짜 민망한 상황이었다.
그렇게 해서 내가 나이 제일 많은 게 밝혀졌고 처음에는 나를 좀 만만하게 보던 눈빛들이 나이 듣고 나서는 동안이라며
왜 아르바이트하는 거냐고 묻기 시작했다, 돈 벌려고 하지 뭐. 다 그런 거 아닌가 싶지만 일 좀 쉬고 있어서 하는 거라고 인자하게 대답해 줬다.
출, 퇴근 시 필요한 명찰도 줬는데 개수가 부족해서 2인 1조로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라고 했다. 명찰 없는 경우 물류센터 쪽 뒷문으로 가야 해서 불편하고 삥 돌아가야 해서 출근도 일찍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. 하지만 내가 갓 21살인 친구에게 "내 무릎 연골 상태 좀 봐서 이거 내가 가져갈게 넌 돌아서 가야 하지 않겠니"라는 말을 못 하니 다시 한번 인자한 척
"이거 그냥 들고 다니면서 사용해요" 하고 넘겨줬다. 그렇게 수원에서 용인구성까지 2주간 빠짐없이 다녔다.
출근할 때 입구 보안 경비실에서 신분 확인하고 들어가던 곳이었는데, 몇 일부는 내가 물류센터 직원인 줄 알았는지, 물류센터 방향으로 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.
업무는 직원들과 같은 사무실 내에서 진행되었고, 직원분이 열댓 명 되는 알바들에게 그날 통화할 리스트들을 나눠줬다.
보통 인당 100명 정도 9시부터 17시까지 점심시간 제외 쭉 콜센터에서 사용하는 헤드셋을 끼고 유선 전화를 돌리면서 주소 확인 및 상품 카탈로그 펼쳐놓고 선택한 선물 리스트업 하는 업무를 했다. 물론 헤드셋을 사용 안하고 싶은 사람은 수화기 들고 내리며 하면 됐다.
근데 대박인 건 통화하는 분들이 VIP이다 보니, 다들 어마어마한 분들이셨고, 행여나 통화하다가 실수할까 봐 긴장하며 일했다. 그런데 전화를 돌리면 대게 집에서 일하시는 도우미 분들이 전화를 받아서, 한번에 통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좀 적었다. 직원들도 아르바이트하는 우리들을 틈틈이 체크하며 상냥함과 친절함을 계속 주입시켰다. 뭐 이건 당연한 거니까.
그런데 몇 시간을 계속 같은 말 하며 반복하고 이야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. 콜업무 하시는 분들 정말 고생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.
그리고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많다 보니 워낙 삼삼오오 무리로 다녀서 이런 분위기 어색하고 같이 어울리는 거 어려워한다면, 젊은이들만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거 사실 좀 어려울 수 있다. 점심은 구내식당에 이 회사 직원들이랑 다 같이 먹는 건데, 삼삼오오 사이에서 혼자 가려고 하면 괜히 혼자 민망할 때가 있긴 있었다.
난 다행히? 마이웨이하는 친구들과 같이 나란히 앉아 일을 했어서, 쉬는 시간 및 초과 근무 때도 자리 뜨지 않은 채 서로 이야기 들어주고 연애이야기도 하면서 우정을 나눴다. 나 역시, 이별을 했던 터라 서로 눈물도 흘리는 사이로 발전했었다.
알게 모르게 나 혼자 나이 많은데 알바나 하고 있다고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닌가 싶은 자격지심이 계속 있었다.
그러다가 한 외국인 임원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.
나름 해외권에서 일하고 온 사람이라 영어에 크게 두려움이 없었기에 다들 쭈뼛하고 있어서 내가 하겠다고 하며 도와줬더니, 눈빛이 달라졌다.
약간 "와 이 언니 짬 좀 있나 보네" 싶은? ㅎㅎ 그런데 사실 나에게 아무 관심 없는데 나 혼자 느낀 자격지심과 자신감이었던 것 같다. 그러다가 직원들까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겼고, 그렇게 계약직을 오퍼 받기도 했었다.
하지만, 괜한 자격지심에 계약직은 고사했고 주말 지원 업무까지 하면서 2주간의 단기 알바는 꽤 짭짤한 수당을 받고 잘 마무리했다.
직원분들도 정말 친절했고 회사가 회사인 만큼 구내식당 퀄리티도 정말 좋고, 톤앤매너들도 정말 인상 깊고 좋았다.
지금 다시 시켜준다면 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던 곳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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